당신의 흰 고래를 쫓고 있나요? <모비딕>에 대한 새로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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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후기/책 리뷰

당신의 흰 고래를 쫓고 있나요? <모비딕>에 대한 새로운 고찰

by 하얀색흑곰 2025. 8. 5.

혹시 너무나 거대하고 두려워서 차마 끝까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책이 있으신가요? 제게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바로 그런 존재였어요. '흰 고래를 쫓는 선장의 복수극'이라는 한 줄 요약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심연이 그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죠.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러다 문득, 제 삶의 방향키가 거친 파도에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 어느 날,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고래를 쫓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집착과 광기가 어떻게 한 세계를 집어삼키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모비딕 표지

 

 

목차

     

     

    바다보다 깊은, 한 남자의 광기

    이 책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포경선 '피쿼드호'와 그 배의 관찰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이스마엘'의 시점에서 시작돼요.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라는 유명한 첫 문장처럼, 그는 우리를 이 거대한 비극 속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죠.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쪽 다리를 앗아간 전설적인 흰 고래, '모비딕'에게 병적인 복수심을 불태우는 '에이해브' 선장입니다.

    19세기 목조 포경선이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담은 유화. 거대하고 유령 같은 흰 고래의 꼬리가 격랑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분위기는 극적이고 불길하며, 거대한 스케일이 느껴진다.

    그는 선원들을 이끌고 고래 기름을 얻는다는 본래의 목적은 내팽개친 채, 오직 모비딕을 죽이겠다는 자신의 광기 어린 목표를 향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해양 모험 소설을 넘어, 인간의 집착이 어디까지 파괴적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시예요.

     

     

    저자 허먼 멜빌은 실제로 포경선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바다와 고래에 대한 묘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고 사실적이죠. 고래의 종류와 생태, 해부학적 구조, 포경 기술에 대한 방대한 설명은 때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떠받치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줍니다. 그의 경험이 녹아든 덕분에 우리는 19세기 포경 산업의 현실부터 바다의 장엄함과 공포까지, 마치 피쿼드호의 선원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낡고 해진 가죽 장정의 '모비딕' 책이 선장의 나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실적인 이미지. 옆에는 놋쇠 나침반, 깃펜, 그리고 따뜻하고 극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는 깜빡이는 오일 램프가 있다.

     

    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구절들

    모비딕을 읽으며 여러 구절에 밑줄을 그었지만, 유독 제 마음을 붙잡았던 몇몇 문장을 나누고 싶어요.

    "모든 수단은 제정신이지만, 동기와 목적은 미쳤다."

    에이해브의 이 독백은 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어요. 목표는 비이성적이고 광기에 찼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과 계획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치밀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삶에도 이런 '합리적인 광기'가 스며든 순간은 없을까요?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이성적인 이유를 끌어다 붙이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뜨끔했답니다.

     

    "마지막까지 너와 씨름하겠다. 지옥의 심장부에서 너를 찌르겠다. 증오를 위해 나의 마지막 숨을 네게 뱉으마."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향해 내뱉는 이 저주는 복수심이 인간을 얼마나 강력하게, 그리고 파괴적으로 만드는지 보여줘요. 이 구절을 읽으며 생각했어요. 모비딕은 단순한 흰 고래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거대한 자연, 신,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의 상징이 아닐까 하고요. 그 앞에 선 인간은 때로 경외 대신 증오를 택하고,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말죠.

     

    "그것은 색이 없는 공허함, 모든 색깔의 무색함이었다."

     

    멜빌은 흰색이 순수함의 상징인 동시에 공포와 죽음, 부재의 색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길게 설명해요. 보통 흰색은 좋은 의미로 쓰이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북극곰의 하얀 털, 백상아리의 흰 배, 심지어 시체의 창백함까지. 흰색은 아름다움 속에 섬뜩한 공포를 감추고 있어요. 이 구절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모비딕이 단순한 악의 화신이 아닌, 해석하기 나름인 거대한 미지의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에요. 우리는 보통 위대함을 완벽함과 동일시하지만, 멜빌은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에 진정한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말해요. 모든 것을 걸고 모비딕을 쫓는 에이해브의 모습은 위대해 보이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집착이라는 열등함에 잠식당하고 말았어요. 진정한 용기는 나의 '흰 고래'를 쫓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집착을 내려놓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 남자의 지친 듯 강렬한 눈에 초점을 맞춘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 동공에는 유령 같은 흰 고래가 비치고 있다. 배경은 집착과 광기를 상징하는 어두운 파란색과 불타는 듯한 붉은색의 추상적인 소용돌이.

    총평: 당신의 '모비딕'은 무엇인가요?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 삶의 어떤 목표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느끼는 분: 이 책은 당신의 열정이 건강한 추진력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광기인지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어줄 거예요. 에이해브의 여정을 통해 집착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고 싶은 분: 모비딕은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인간 내면의 심연을 탐사하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이성과 광기, 선과 악, 운명과 자유의지 등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생각의 깊이를 더해줄 것입니다.
    • '고전'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짜 재미를 발견하고 싶은 분: 두꺼운 분량과 어려운 문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도전해보세요. 박진감 넘치는 해상 전투와 생생한 캐릭터, 장엄한 자연 묘사는 그 어떤 스릴러 영화 못지않은 몰입감을 선사할 겁니다.
    고요한 해돋이 바다를 담은 아름다운 광각 샷. 하늘은 부드러운 파스텔 색으로 칠해져 있다. 멀리서 고래 한 무리가 평화롭게 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인다. 분위기는 평온하고 희망적이다.

     

    마무리하며

    모비딕은 제게 단순한 책 한 권이 아니었어요. 제 안의 '에이해브'를 마주하게 한 거울이었고,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묻는 거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흰 고래'가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이루고 싶은 꿈일 수도, 떨쳐내고 싶은 트라우마일 수도, 혹은 이기고 싶은 경쟁자일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그 '흰 고래'를 쫓는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은 그 성찰의 기회를 주는 위대한 항해로 당신을 초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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